3. 미국은 어떻게 하늘을 날던 화웨이를 추락시켰는가?
미국의 ‘화웨이 사냥’은 미국이 경쟁 상대를 굴복시키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잘 보여 준다.
사냥의 시작은 중국의 경제가 너무 커져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미국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화웨이는 희생양으로 뽑힌 것이다.
중국에 대한 경계론은 지난 2017년 백악관이 발표한 ‘미국 국가안보전략’이라는 보고서로부터 생겨났다. 이 보고서는 중국이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전파하면서 미국식 민주주의에 도전하고 있으며, 특히 경제력은 머지않아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예상돼 결국 미국의 안보에 커다란 도전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이 보고서 전에는 적어도 미국은 중국을 세계 경제의 동반자로 간주하면서 같이 도움을 주며 성장하는 대상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미국은 중국이 경제가 발전해 서구식의 민주주의 국가로 편입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앞서 2015년 5월 중국은 ‘중국제도 2025’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기술굴기’를 2025년까지 완성, 세계 최고의 첨단 산업 국가로 우뚝 서겠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그 때까지 옆에서 멋모르고 자고있던 미국이라는 사자를 발길로 차서 깨우는 역할을 했다.
미국을 좀 더 알았더라면 중국은 ‘화평굴기’의 시간을 좀 더 갖고 발톱을 감춘 채 ‘대국굴기’의 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관세 전쟁에서부터 화웨이 사냥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미중 무역전쟁의 전개를 보면 중국이 너무 빨리 미국에게 도전한 느낌이 든다.
‘미국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 이어 2018년 6월18일 백악관의 무역·제조업 정책국(OTPC)은 ‘중국의 경제 침공이 미국과 세계의 기술과 지적재산권을 어떻게 위협하는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중국의 위협은 점점 구체적으로 미국에 인식되기 시작했다.
◇화웨이 수난 일지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대응에 나서기 시작한 미국은 다음 해 5월15일 미국 상무부의 산업안보국(BIS)이 화웨이를 규제 대상 무역 블랙 리스트에 올리면서 ‘화웨이 사냥’은 본격화됐다. 블랙 리스트 등재에 따라 미국 기업들은 화웨이 및 70개 자회사가 만든 통신 장비를 구매할 수 없게 됐는데,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드디어 올 6월30일 미국통신위원회(FCC)는 화웨이와 또 다른 중국 기업인 ZTE 및 모든 관련 회사를 ‘국가안보 위협’으로 규정했다. 무역 문제가 국가안보 문제로까지 발전하게 됐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이 결국은 헤게모니 쟁탈전이라는 성격을 내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에 앞서 2018년 8월 ‘2019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이 발효돼 화웨이와 ZTE의 통신 장비는 미국 연방정부가 사용할 수 없게 됐다. 국가 안보를 해친다는 것이 법에 명시돼 있다. 화웨이는 이듬해 5월 미국 정부가 항변권을 주지 않아 헌법적 권리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그것이 미국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미국은 법치 국가인 것이 분명한 것이, 화웨이를 사냥하는 도구는 1차적으로 법 규정이 동원됐다. 지난 해 5월15일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와 70개의 해외 자회사 및 관계사를 ‘수출행정법규’에 따라 규제 대상 목록에 올렸다. 상무부는 화웨이가 ‘상품·기술·용역 등을 미국으로부터 이란 및 이란 정부로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수출·재수출·판매·공급한 혐의로 기소됐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따라 미국에 본부를 각국 기업들은 미국의 규제에 따라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했다. 이 가운데는 구글도 포함돼 있는다. 여기에 동참한 대표적인 기업들은 브로드컴·인텔·퀄컴·마이크로소프트·웨스턴 디지털 등이 총 망라됐다. 독일 반도체 메이커인 인피네온 테크놀로지는 자발적으로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관련 기업들의 자발적인 규제도 이어졌다. 5월22일 ARM 홀딩스는 화웨이와의 모든 거래를 중단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일본인 소유의 ARM은 미국 기술의 지적재산권이 포함된 자신들의 제품이 미국 상무부의 명령을 어겼을 수도 있다고 믿고 지레 거래를 중단한 것이다.
ARM의 이러한 조치는 화웨이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는데, ARM 설계를 사용한 칩을 제조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자발적 거래 중단 회사는 계속 이어졌는데, 아시아의 대표적 통신회사들인 일본의 소프트방크와 KDDI, 대만의 청화 텔레콤과 타이완 모바일 등도 미국의 규제를 의식해 화웨이에 부품 공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올 들어 지난 5월15일에는 미국 상무부가 화웨이가 미국 소프트웨어나 기술을 이용해 제조된 반도체 생산을 금지토록 하는 법의 효력을 연장했고, 이어 8월17일에는 모든 외국의 반도체 회사가 미국 소프트웨어나 기술을 이용한 반도체를 미국 정부의 사전 허가 없이 화웨이에게 공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재를 발표했다.
같은 달 화웨이가 구글로부터 획득한 스마트폰 운영 체제인 안드로이드의 사용권이 만료됨에 따라 화웨이는 이번 달 11일 전 세계 7억 명이 사용하는 OS를 자체 개발한 ‘홍멍’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같이 화웨이를 사냥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미국의 각종 법규였다. 그리고 해외 기업의 수많은 법규 위반을 감시하고 제재를 가하는 막강한 총괄 기구는 미국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 : Office of Foreign Asset Control)이다. 미국이 세계를 상대로 강제하는 각종 제재의 집행 기구다.
◇OFAC
미국 재무부의 정의에 따르면 OFAC는 제재 국가와 정권, 테러리스트, 국제마약조직 등에 대항해 외교 정책과 국가안보라는 목표에 기반, 경제 및 무역 제재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OFAC는 또 대량 살상 무기 확산에 연관된 행동을 한 조직이나 개인, 그리고 미국의 국가 안보, 외교 정책, 또는 경제 등에 위협을 가하는 대상의 통제를 목표로 한다.
OFAC는 각종 관련 법에 따라 경제 제재와 형사 처벌, 민사 처벌을 부과할 수 있다. ‘적대국무역법’(TWEA)은 북한 및 쿠바와 무역을 할 경우 형사 처벌은 최고 10년까지의 징역, 민사 처벌은 최고 1백만 달러까지의 벌금을 기업에 부과할 수 있다. 개인에게는 민사 처벌만 가능한데, 최고 10만 달러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국제긴급경제수권법’(IEEPA : 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도 규제 대상 국가인 수단·이란·짐바브웨·시리아·버마 등과 다이아몬드, 마약 등을 거래하면 기업은 형사 처벌로 최고 20년의 징역에 처할 수 있고, 민사 처벌은 최고 50만 달러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개인은 민사 처벌만 가능한데, 최고 25만 달러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또 이라크제재법(ISA : Iraq Sanctions Act)도 최고 12년의 징역과 1백만 달러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OFAC의 이러한 제재는 기업이나 개인, 또는 정권의 위반 행위를 적발해야만 가능한데, 전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각 용의자들의 위반 행위는 결국 돈의 흐름으로 적발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돈의 흐름을 들여다 보는 것이 스위프트(SWIFT : 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라는 국제 기구다.
◇스위프트
전 세계에서 안전하고 표준화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금융거래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기구다. 스위프트는 금융기관에 네트워크를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용역을 금융기관에 제공한다.
2018년의 경우 전 세계 국가 간 고액 거래의 거의 절반은 스위프트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졌다. 2015년의 경우 1만1천 개의 금융기관이 2백 개 이상의 국가에서 하루 평균 3천2백만 건의 금융 거래를 처리했는데, 이러한 내용을 회원사에 통보하는 것이 스위프트의 일이다.
미국은 지난 2001년 911 이후 테러리스트의 자금을 추적한다는 목적으로 스위프트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거래를 들여야 보고 있다. 이 기구의 이사 15명 가운데 3명이 미국인이고, 의장도 미국이 맡고 있어 스위프트는 미국의 경제 제재를 위한 아주 유용한 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
◇칩스((CHIPS : Clearing House Interbank Payment System)
그러나 미국의 제재에 불응하는 개인·기업·국가가 나올 수도 있다. 이러한 대상에 대한 최종 응징은 칩스가 담당한다.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달러 결제는 이 칩스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최종 거래가 완성된다. 하루 1조5천억에 달하는 달러 결제를 관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이 시스템을 통한 결제를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결국 달러 표시 거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제를 거부당한 개인·기업·국가는 세계 경제에서 불구가 된다. 그래서 미국의 제재를 받은 거의 대부분의 당사자들은 미국의 처벌을 거부하지 못하고, 대개 때로는 거액의 벌금을 지불하면서 합의를 통해 해결한다.
◇올해 OFAC의 제재 사례
OFAC는 개인이나 기업, 국내 기업이나 외국 기업 등을 가리지 않고 제재법을 위반한 경우는 예외 없이 기소를 하지만, 대부분 벌금 납부로 합의를 보는 형식으로 사건을 종결 짓는다. OFAC는 형사 처별과 민사 처벌을 모두 과할 수 있으나, 대부분 민사 처벌인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콤텍 텔레커뮤니케이션(Comtech Telecommunication : 9월17일)
뉴욕에 본부를 둔 콤텍은 지분 전량을 소유한 자회사인 콤텍 EF 데이터를 통해 제재 대상 국가인 수단에 장비와 용역을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후 89만4천 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이 회사는 제재 품목인 위성 장비를 간접적으로 수단에 수출하고 수단 정부 소유 기업의 직원들을 교육시킴으로써 미국이 제정한 ‘수단제재법’(SSR)을 위반한 것이다.
*파크 스트레이트지스(Park Strategies : 1월21일 )
파크 스트레이트지스는 뉴욕에 본부를 둔 로비 회사로 ‘글로벌 테러리즘제재법’(GTSR)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돼 1만2천 달러의 벌금으로 합의했다. 이 회사는 지난 2017년 8월 25일 경 소말리아 소재 알 바라카트 그룹과 용역 계약을 체결해 명백히 GTSR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도이체 방크(9월 9일)
도이체 방크 아메리카(DBTCA)는 키프러스의 석유회사로부터 미국을 통해 석유를 구매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15만7천500 달러를 지불하고 합의했다. 키프러스의 석유회사와 거래를 하면서 ‘우크라이나 관련 제재법 및 행정명령’(Ukraine-Related Sanctions Regulations and Executive Order)을 ‘명백히’ 위반했다는 것이다.
도이체 방크는 거래 당시 스위프트의 회원으로 가입돼 있지 않아 위법 거래 여부를 통보받지 못했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스위프트에 가입했다.
*개인(미국인, 8월11일)
미국의 한 자연인은 제재 대상인 마약 거래상과 24차례 거래한 혐의로 기소된 후 5천 달러의 벌금을 지불했다. 이 미국인은 평소 알고 지내던 마약 거래상이 제재 대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해외에 근무하던 중 마약을 거래해 ‘해외마약상제재법’(FNKSR)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아마존(7월8일)
미국 시애틀에 본부를 둔 아마존은 OFAC의 제재를 여러 건 위반한 혐의로 기소돼 13만4천 달러의 벌금을 내고 합의했다. 아마존이 OFAC의 제재 대상인 개인들에게 상품과 용역을 판매했다는 것이다.
구매자들은 크리미아, 이란, 시리아 등 제재 대상 국가에 거주하는 개인들이다. 아마존은 또 수백 건의 거래를 OFAC에 제 때에 보고하지 않은 혐의도 받았다.
이렇게 OFAC가 엄중한 감시를 하면서 적발되면 과중한 처벌을 하고 있기 때문에 화웨이 사냥에 연루된 기업들이 미국의 명령에 거부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 제재 거미줄은 너무나 촘촘하고 치밀해서 목표가 된 중국의 거대 기업들이 줄줄이 포획되고 있는 것이다.
4. 당장은 달러를 대신하거나 병행할 통화가 없는 것이 문제
달러를 미국의 법과 정책을 국경 너머까지 강요하는 도구로 쓰기 시작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를 부르짖기 시작한 때부터 였다. 미국의 적대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 다른 많은 국가들은 그러한 행위를 권력의 남용으로 간주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정치적 무기’라고 비난했다.
영국 및 프랑스 같은 우방국도 마찬가지 생각인데, 세계 시장 질서의 보호자로서 미국의 역할이 축소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달러의 도구화는 결국 미국의 금융 헤게모니를 붕괴시킬 가능성이 있는데, 다른 국가들이 달러를 회피할 수 있는 통화 제도를 모색하기 때문이다.
실제 국제금융계는 달러의 횡포를 피하기 위해 새로운 은행거래 지불수단과 디지털 화폐 등과 같은 새로운 국제통화를 검토하고 있다. 2018년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회담을 갖고 무역 결제를 자신들의 통화로 하는 방식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란, 말레이시아, 터키, 카타르 등은 정상회담에서 전자 화폐, 자국 통화, 금, 물물 교환 등의 방식을 제안했다. 그러한 각국의 움직임은 그동안 불만만 토로하던 태도에서 실제 행동을 나설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러시아
러시아가 제일 먼저 달려나갔다. 러시아는 자국의 중요한 은행과 회사들이 위험에 처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국이 불량하다고 간주하는 국가들과의 교역이 가능한 기업·단체를 늘렸다. 러시아 정부가 후원하는 프롬스비야츠방크 PJSC는 제재 위협으로부터 스베르방크나 VTB 같은 러시아의 대형 은행의 거래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러시아는 금융 시스템의 탈달러화도 열심히 해왔다. 2013년부터 러시아 중앙은행은 달러가 차지하는 외환 보유율을 40%에서 24%로 낮췄다. 2018년부터는 중앙은행이 보유하던 미국 재무부증권을 1천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 이하로 낮췄다.
러시아 재무장관은 지난해 1,250억 달러에 달하는 국부펀드에서의 달러 비율도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달러를 도랑에 쳐넣겠다는 것이 푸틴 대통령의 표현이다.
이러한 러시아의 본격적인 행동은 미국의 경제 제재에 기인한다. 러시아가 2014년 크리미아 반도를 합병하자, 그때부터 미국이 경제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론 러시아의 결제 통화 다양화를 위한 희망도 담겨 있었다.
러시아의 부채도 탈달러화가 진행되고 있다. 새로 발행되는 채권은 루블화나 유로화 표시이며 위안화 표시 채권도 판매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기업들의 부채는 2014년 이후 2,600억 달러로 감소했는데, 이 가운데 2,000억은 달러 표시이다.
반면에 러시아 기업들과 시민들은 달러 보유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기업 및 가계 보유 달러는 지난 2014년 현재 800억 달러로 조사됐다. 달러 자산이 같은 금액의 유로화보다 이자가 높고 제재의 위험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ING 금융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의 상품과 용역 수출은 62%가 달러로 이루어졌는데, 2013년의 80%보다는 많이 줄어든 액수다. 중국과의 교역도 2013년에는 거의 모두 달러로 이루어졌는데, 현재는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인도와의 교역은 제재에 민감한 군수 장비가 많은데, 전액 달러에서 루블로 전환해 놓았다.
◇중국
중국도 러시아의 전철을 따라올 수 있을까. 중국은 과다하게 달러 중심 금융 시스템에 노출돼 있다. 미국이 화웨이 같은 중국의 첨단 기업을 제재 명단에 올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들과 거래를 하는 부품 공급 업체와 거래 당사자들을 처벌하면서 이루어진다. 미국 행정부는 또 뉴욕에 본부를 둔 중국 기업들을 제재 리스트에 올리고 중국 회사에 투자하는 미국인들의 구매 행위를 제한한다.
중국이 미국의 달러 제재를 회피하려던 첫 번째 시도는 엉망으로 돼 버렸다. 2007~2008년 국제금융위기 동안 중국은 위안화의 국제화를 촉진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pecial Drawing Rights)의 일원이 되기 위해 압력을 가했고, 그 결과 준비 통화로써 인가를 IMF로부터 받았다.
의기양양해진 중국은 2020년까지 달러에 도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2015년 중국 주식 시장이 붕괴되자, 중국 정부는 어설프게 자본 통제를 강화했다. 그 결과 위안화의 세계통화 점유율은 몇 년 동안 2%대에 머물러 있었다. 결국 중국 위안화의 국제화는 섣부른 시도였음이 드러났다.
시간이 흐른 지금 달러에 대한 도전은 또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은 CIPS라는 국내 거래 및 결제 통보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구축했다. 이 시스템이 구축되기 전인 2015년까지만 해도 국제결제 통보 시스템인 스위프트(SWIFT)에 의해 이루어지던 것이었다.
그러나 규모는 약소해, 2018년의 경우 연간 처리 건수가 스위프트가 하루에 처리하는 양밖에 안 됐다. 그래도 해외 결제를 위안화로 단순화하면서 은행의 결제 방식을 다양화했다. 현재 중국, 인도 및 기타 국가들이 스위프트의 대안 시스템을 합동으로 운영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 화폐
중국은 재래식 은행보다 빠른 속도로 세계화하는 온라인 기업들 덕분에 부분적으로나마 세계의 소비자 금융 시스템에 진입할 수 있었다. 알리바바와 자회사 앤트 파이낸셜을 통한 결제는 전 세계 56개 국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알리페이 로고는 어느 지역에서는 비자와 마찬가지로 쉽게 볼 수 있다.
자본 시장에서 2018년 중국은 위안화 표시 원유 선물 거래를 상하이 시장에 소개했다. ‘페트로 위안’이라고 알려진 이 선물 거래는 달러 표시 원유 거래에 대한 잠재적 대항마로 여겨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주요 국제 기업들을 자국 시장에 유치하려고 노력 중이다.
한편 중국 중앙은행은 새로운 디지털 화폐를 위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에서 미국을 앞서, 어떠한 형태로든 디지털 화폐시스템이 국제적으로 구축되면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생각이다. 중국 정부는 또 브라질, 러시아, 인도, 남아공 등 브릭스 국가들과 공동으로 암호화폐를 창설하는 문제도 논의했다.
◇EU
이러한 달러 탈출 움직임은 놀랍게도 미국 적대국뿐만 아니라 우방국에서도 나오고 있다.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집행위원회 위원장은 2019~2024년을 위한 성명에서 “유로의 국제적 역할을 강화하기 원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은 현재 회원국들이 달러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행동 계획을 마련 중에 있다.
한때 유로존 위기가 시작되기 전, 유로는 달러의 강력한 대항마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특히 몇몇 중동 산유국들이 유로 청구서를 발행하기 시작하면서 유로를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유로존의 위기가 닥치면서 유로가 얼마나 취약한 통화인가를 증명했다. 비록 유럽중앙은행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유로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불안한 유로 결제를 몇 개 국가들이 거부하기 시작하면서 유로 환율은 폭락할 수도 있다.
따라서 아직 달러를 배척할 때가 아니다. 유로나 위안을 주요 준비 통화로 쓰기에는 장애물이 많다. 위안화는 충분히 태환이 되지 않고, 중국의 자본 통제가 외국인들이 위안화를 보유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위안화는 아직 거래하기에 안전한 자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앙은행은 전형적으로 자신들이 선호하는 화폐로 표시된 안전 자산의 형태로 준비 통화를 보유한다. 그러나 안전 자산이 없을 경우 현금을 보유해야 한다. 그러나 현금은 이자도 없고 불편하다. 국제외환시장에서 위안화의 점유율은 계속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아시아 국가들도 계속 엔화나 달러에 의존하고 있다.
하여튼 미국 달러의 횡포로 인해 전 세계가 신음하고 있지만, 당분간 달러 지배를 별수 없이 계속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출처: 아이뉴스24 (김상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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