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애플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작년 11월 11일, PC 업계에 커다란 지각변동이 나타났다. 애플이 발표한 M1 칩 기반의 PC 제품들 때문이다. M1 칩은 인텔이나 AMD가 공급하는 x86 기반의 CPU가 아니라 ARM 코어 기반의 CPU다. 일반적으로 ARM 코어는 스마트폰, 태블릿PC와 같은 저전력 기기용으로 개발된 것이므로 성능 측면에서는 x86 기반의 CPU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물론 언젠가는 스마트폰의 성능이 PC를 따라잡을 것이라는 막연한 예측은 있었지만, 실제 이를 실행에 옮기기는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하드웨어 아키텍처가 다르고, OS 역시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 30여 년간 윈텔 동맹이 유지되었던 것도
PC에는 윈도우 OS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애플의 이런 변화 시도는 IBM이 1981년 IBM PC를 발표한 지 정확히 40년 만이다. IBM은 현재 PC의 구조를 고안해낸 최초의 회사다. PC의 구조를 표준화해 IBM PC 호환기종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제조사들이 PC를 개발해 판매하다 보니 오히려 IBM이 최초 개발해 선보인 IBM 5150은 5년도 되지 않아 단종됐다.
당시 IBM PC의 경쟁상대는 애플의 매킨토시였다. 1984년 첫 출시된 매킨토시는 처음으로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마우스를 채용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IBM 호환 기종들은 규모의 경제 효과를 일으키면서 빠른 속도로 가격이 싸졌고, 매킨토시는 내부 공개도 하지 않은 데다가 비싸다 보니 한때 명맥이 끊길 뻔도 했다.
어쩌면 애플이 지난 30년 동안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애플이 PC 시장에서 항상 약점으로 지적되어 왔던 것이 CPU였다. 애플은 매킨토시 개발 초기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IBM, 모토로라와 협력해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 기반의 PowerPC CPU를 적용했다. RISC 기반의 CPU는 명령어를 최소화하여 단순하게 제작되므로 효율적이지만, 하위 호환을 위해서는 에뮬레이터가 필요해 소프트웨어는 복잡해지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PC 시장이 빠르게 발전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판매량이 많지 않을 경우 개발비가 높아져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은 윈도우 95와 펜티엄 프로세서로 애플의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하락시켰다.
애플은 처음부터 인텔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2006년 인텔 CPU로 전면 교체하는 전략을 발표했다. 인텔 CPU 기반의 맥 컴퓨터(이하 인텔 맥)가 등장하면서 오히려 애플의 시장 점유율은 상승했다. 매킨토시는 가격이 비싸다는 선입견이 강했지만, 인텔 맥은 IBM 호환기종과 유사한 부품을 사용하다 보니 부품 가격이 싸졌고,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원가절감이 되는 등 선순환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플은 CPU 독립 의지를 절대 버리지 않았다. 아이폰을 처음 출시한 2008년 이후 12년간 ARM 코어 CPU를 연구해 오면서 어떻게 하면 PC에도 같은 계열의 CPU를 적용할지 그 시점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애플은 이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자체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CPU 업계에 큰 이정표를 세웠다고 볼 수 있다.
2. M1 기반의 신규 맥북프로, 시장의 엄청난 호평
애플 실리콘이라 불리는 M1 칩이 처음 적용된 신형 맥북 프로가 발매된지 약 4개월이 지났다. 이 제품에 대한 시장 반응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처음에는 과연 기존 맥북 제품을 대체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이제는 M1 이후 버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기본적으로, 신형 맥북 프로는 기존 인텔 CPU가 적용된 맥북 프로에 비해 사용 시간이 2배 가까이 증가했고, 성능은 거의 유사하거나 어떤 면에서는 이를 능가하기도 한다.
애플은 10W 전력소모 기준으로 M1 칩이 다른 노트북용 CPU에 비해 2배 가까운 성능을 내고 있고, 최고 성능을 사용 중일 때 기준으로 전력소모가 25%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또한, 와트당 CPU 성능이 기존 대비 3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GPU 성능도 이와 다르지 않다. 10W 전력소모 기준 성능이 2배 높아졌고, 최고 성능 기준 전력소모는 기존 대비 33%에 불과하다. 애플은 노트북의 성능과 전력소모 2가지를 모두 만족시켜주는 이상적인 제품을 설계한 것이다.
벤치마킹 전문 업체의 분석 데이터도 애플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Geekbench에 따르면, M1 칩이 인텔 i5 코어 CPU를 크게 앞서고 있고, 7나노 기반의 AMD Ryzen 7 CPU와 비교해봐도 대등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수치 말고도 사용자 후기는 더욱 호평 일색이다. 네이버 카페 ‘맥 쓰는 사람들’의 사용 후기를 종합해 보면, 1) 인텔 프로세서 대비 지연성, 발열, 소음이 덜하고, 2) 3D 캐드와 같은 일부 복잡한 프로그램상에서도 인텔 맥보다 부드러운 사용성을 발휘해주며, 3) 멀티태스킹 테스트에서도 수십 개의 프로그램을 띄워 놓아도 작동 상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었다. 또한, M1이 1세대 제품이라 큰 기대 없이 구매했던 사람들은 의외로 엄청난 성능에 놀라는 반응이 많았다.
애플 전문 블로거 역시 거의 모든 테스트 부문에서 인텔 맥북 프로는 팬이 엄청나게 작동하는 반면, M1 맥북 프로는 전혀 작동하지 않아 전력소모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고, 성능 역시 전반적으로 2019년 고급형 16인치 맥북 프로(인텔 i7 코어 적용)보다도 빠른 것 같다고 언급했다.
올해 초 CES에서도 M1 칩은 화제의 중심이었다. AMD CEO 리사 수(Lisa Su)는 애플의 M1 칩이 혁신의 기회라고 여기며 지속적인 그래픽 파트너십을 강조했고, ARM CEO 사이먼 시거(Simon Segars)는 PC 산업의 진정한 혁신이라면서 M1 칩을 높이 치켜세웠다. 특히 CPU 업계에서 경쟁자로 볼 수 있는 AMD가 M1 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눈에 띈다. AMD는 현재 애플 PC 제품군에 Radeon 그래픽 카드 솔루션을 공급 중이기 때문에, 애플과의 협력 관계를 염두에 둔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AMD는 애플의 전략을 교훈 삼아 향후 적극적으로 ARM 코어 기반의 PC CPU를 개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동사는 CPU와 GPU를 통합한 M1과 같은 칩을 만드는데 있어 가장 가능성이 높은 후보군으로 꼽힌다.
3. 인텔의 흑역사는 반복
인텔은 과거에도 CPU 산업에서 큰 타격을 입었던 적이 있다. 바로 넷북이나 태블릿PC 등 저전력 휴대용에 초점을
맞춘 아톰(ATOM) 프로세서를 공급할 때였다. 아톰 프로세서는 원래 기존 펜티엄 프로세서의 클럭속도를 낮춰 저전력
저사양급의 UMPC(Ultra Mobile PC)를 만들기 위해 개발된 CPU 종류다. 첫 아톰 프로세서는 2008년 출시되었고, 45나노 기반으로 제조되었는데, 단순히 동작 전압과 클럭속도를 낮춘다고 해서 저전력 기기를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 이를 활용하여 등장한 제품이 넷북이었다.
넷북은 500달러 안팎의 저렴한 가격으로 인해 2010년대 초반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패드를
중심으로 태블릿PC 시장이 확대되면서 시장에서 금새 자리를 잃었다. 넷북과 태블릿PC는 간단한 웹서핑이나 동영상 감상이 주된 목적이었는데, 태생적으로 아톰 프로세서의 전력소모가 ARM 코어 기반 AP의 전력소모를 따라갈 수 없었으므로 넷북 시장은 빠르게 태블릿PC로 대체되었던 것이다.
사실 인텔이 태블릿PC용 프로세서를 개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톰 프로세서의 파생 제품으로 아톰Z CPU를 내놓기도 했고, 주요 PC 제조사들이 이를 활용해 태블릿PC 제품을 선보였다. 또한, 아톰 프로세서상에 안드로이드 OS를 적용해 기존 태블릿PC 사용자들에게 어필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텔의 모바일 부문 실적은 날이 갈수록 안 좋아졌고, 마지막 아톰 프로세서가 출시된 것은 2013년이었으며, 공식 개발 종료 선언은 2016년에 이뤄졌다. 이 당시 인텔은
인피니언으로부터 인수한 모바일 모뎀칩 사업에 집중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는데, 결국 5G 모뎀칩 개발도 2019년 공식 종료함을 선언했고, 이 사업은 애플에 인수되었다.
결과적으로, 인텔은 스마트폰, 태블릿PC 시장이 확대되는 와중에 CPU 개발 전략이 틀렸음을 지난 10년간 몸소 보여준 셈이다. 애플의 M1 칩 등장으로 인해 PC 산업은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고 있고, 인텔은 또 한번 흑역사가 시작될 수 있는 기로에 놓여있다. 10년간 바로잡지 않은 전략 방향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나타날 것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To-be continued..
출처: 한화투자증권, 인텔, AMD, Acer, Geekbench, 애플, 다나와
뜨리스땅
https://tristanchoi.tistory.com/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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